1960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60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첫 대회 참가팀·8강·4강·결승과 페냐롤의 초대 우승

남미 7개 나라의 챔피언이 모인 첫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의 첫 경기, 수상 비행기로 온 윌스테르만, 지진 뒤 몬테비데오로 간 4강 재경기, 스펜세르의 결승골과 아순시온의 1-1까지 경기 기록으로 읽는다.
트로피를 든 페냐롤 선수들의 흑백 사진 위에 페냐롤 2, 올림피아 1의 결승 합계를 얹은 삥이FC 디자인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결승 합계, CA 페냐롤 2-1 클루브 올림피아. 디자인: 삥이FC.
CONMEBOL 리베르타도레스 로고

제1회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Copa de Campeones de América 1960

1960년 4월 19일 오후 4시 11분, 몬테비데오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Estadio Centenario)에서 볼리비아 챔피언의 공격수가 첫 공을 찼다. 남미 일곱 나라의 챔피언이 홈과 원정으로 맞붙는 대회,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Copa de Campeones de América; 아메리카 챔피언들의 컵)의 첫 경기였다. 포르투갈어로는 코파 두스 캄페앙스 다 아메리카(Copa dos Campeões da América)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라고 부르는 대회의 시작이다. [3]

1960 시즌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의 스페인어·포르투갈어 명칭과 대회 주관 협회 남미 축구 연맹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대회 개요. 주관은 남미 축구 연맹(CONMEBOL)이다.

산티아고의 1948년, 몬테비데오의 1960년

남미 클럽들이 챔피언끼리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4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콜로콜로가 일곱 나라의 챔피언을 불러 한 달 넘게 리그전을 치렀고, 남미 축구 연맹은 이 대회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전신으로 인정한다. 그 대회의 이야기는 1948 남미 챔피언 오브 챔피언십 편에 적었다.

12년 뒤의 대회는 성격이 달랐다. 1948년에는 한 구단이 차린 대회를 연맹이 승인했다면, 1960년에는 남미 축구 연맹(CONMEBOL; Confederación Sudamericana de Fútbol)이 직접 대회를 열었다. 한 도시에 모이는 리그전 대신 유럽의 유러피언컵처럼 두 팀이 서로의 안방을 오가는 방식을 택했다. 유럽은 1955-56 시즌부터 유러피언컵을 치르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네 번 연속 우승했고, 이 대회의 4강이 열리던 5월 18일에는 글래스고에서 다섯 번째 우승을 한다. 남미 챔피언을 정해 유럽 챔피언과 맞붙게 하자는 구상이 이 대회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경기 방식도 유럽과 조금 달랐다. 두 경기의 합계 골이 아니라 승점으로 진출팀을 가렸다.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이었고, 승점이 같으면 골득실을 봤으며, 그래도 같으면 중립지에서 재경기를 치렀다. 대회 이름에는 아직 리베르타도레스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첫 경기 날 몬테비데오의 아침 신문 《엘 데바테》(El Debate)는 이미 “페냐롤과 윌스테르만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두고 겨룬다”는 제목을 달았다. 남미 독립 영웅들의 이름을 딴 그 컵이 대회의 상징이었다. [3]

7개 나라의 챔피언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참가 일곱 구단의 나라와 참가 자격
참가 구단과 자격. 도판의 리그 이름 가운데 리가 프로페시오날 데 푸트볼(아르헨티나), 리가 데 푸트볼 프로페시오날 볼리비아노,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는 훗날의 이름이다. 1959년 EC 바이아의 전국 대회 자격은 타사 브라질 우승이다.
참가 7개 구단구단과 출전 횟수·참가 자격 비교하기펼쳐 보기접기
대표 지역참가 구단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참가팀을 이해할 국내 성적·배경
아르헨티나CA 산 로렌소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볼리비아CD 호르헤 윌스테르만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브라질EC 바이아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 타사 브라질 우승
칠레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콜롬비아미요나리오스 FC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파라과이클루브 올림피아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 1회전 부전승
우루과이CA 페냐롤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1959년 리그 우승

참가 자격은 하나였다. 1959년 각국 리그 챔피언이다. 아르헨티나의 CA 산 로렌소(Club Atlético San Lorenzo de Almagro), 볼리비아의 CD 호르헤 윌스테르만(Club Deportivo Jorge Wilstermann), 브라질의 EC 바이아(Esporte Clube Bahia), 칠레의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Club Universidad de Chile),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 FC(당시 명칭 Club Deportivo Los Millonarios), 파라과이의 클루브 올림피아(Club Olimpia), 우루과이의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까지 일곱 구단이 나왔다. 에콰도르와 페루, 베네수엘라의 챔피언은 나오지 않았다. [1][2]

브라질 대표만 사정이 달랐다. 브라질에는 아직 전국 리그가 없었고, 각 주 챔피언이 모여 겨루는 타사 브라질(Taça Brasil)이 1959년에 처음 열렸다. 그 첫 대회의 우승팀이 바이아주의 EC 바이아였다. 1948년 대회에 바스쿠 다 가마가 히우지자네이루주 챔피언 자격으로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브라질은 12년 만에 전국 대회 챔피언을 대륙 대회에 보낸 셈이다.

8강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8강 네 칸의 대진과 결과
8강 대진과 결과.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줄의 국기는 칠레 국기로 바로잡는다. 대진상 올림피아의 상대였던 페루 챔피언 우니베르시타리오는 참가를 확정하지 않아 경기가 열리지 않았고, 올림피아는 상대 없이 4강에 올랐다.
8강 3개 대진1·2차전과 합계, 4강 진출팀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대진1차전2차전합계진출
CA 페냐롤CD 호르헤 윌스테르만7-11-18-2CA 페냐롤
CA 산 로렌소EC 바이아3-02-35-3CA 산 로렌소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미요나리오스 FC0-60-10-7미요나리오스 FC

CA 페냐롤 8-2 CD 호르헤 윌스테르만: 대회의 첫 경기

윌스테르만 선수단은 경기 나흘 전 수상 비행기를 타고 몬테비데오만에 내렸다. 페냐롤 선수들은 손님들을 위해 아사도를 차렸다. 4월 19일은 33명의 동방인이 상륙한 날을 기리는 우루과이의 국경일이었고, 페냐롤은 아르티가스의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윌스테르만 선수들은 우루과이 국기를 들고 들어왔다. 칠레의 카를로스 로블레스 주심이 경기를 맡았다. [3]

첫 골은 13분에 나왔다. 오른쪽 윙어 루이스 쿠비야(Luis Alberto Cubilla; 우루과이 공격수, 1940-2013)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오자 왼쪽 윙어 카를로스 보르헤스(Carlos Borges; 우루과이 공격수, 1932-2014)가 다시 찼다. 보르헤스는 17분에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쿠비야가 21분에 세 번째 골을 더했다. 29분 페냐롤의 페널티킥은 주장 윌리엄 마르티네스가 크로스바 위로 날렸다. 그다음은 알베르토 스펜세르(Alberto Pedro Spencer Herrera; 에콰도르 축구선수, 1937-2006)의 시간이었다. 35분, 57분, 66분, 89분에 네 골을 넣었다. 윌스테르만은 48분 주장 막시모 알코세르(Máximo Alcócer; 볼리비아 공격수)의 골로 대회 첫 원정 골을 남겼다. 3만 5,000명이 본 7-1이었다. [2][3]

4월 30일 라파스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Estadio Hernando Siles)의 2차전은 1-1이었다. 쿠비야가 다시 골을 넣었다. 윌스테르만은 첫 대회를 1무 1패로 마쳤다. [1][2]

8강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CA 페냐롤 vs CD 호르헤 윌스테르만

CA 페냐롤 로고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우루과이 국기우루과이
합계8:2두 경기 결과
CD 호르헤 윌스테르만 로고
CD 호르헤 윌스테르만CLUB DEPORTIVO JORGE WILSTERMANN볼리비아 국기볼리비아
1차전
7 : 1
2차전
1 : 1
4강 진출
CA 페냐롤

CA 페냐롤보르헤스 13분 17분, 쿠비야 21분, 스펜세르 35분 57분 66분 89분

1차전

CD 호르헤 윌스테르만알코세르 48분

CA 페냐롤쿠비야 43분

2차전

CD 호르헤 윌스테르만가르시아 55분

센테나리오의 첫 경기에서 7골, 라파스에서 1-1. 스펜세르가 4골을 넣었다.

CA 산 로렌소 5-3 EC 바이아: 득실차로 갈린 승점 2 대 2

다음 날인 4월 20일, 산 로렌소는 안방 가소메트로 대신 CA 우라칸의 경기장인 엘 팔라시오에서 바이아를 맞았다. 관중은 1만 명이었다. 오스카르 로시와 루이스가 골을 넣었고, 호세 산필리포(José Francisco Sanfilippo;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1935-)가 89분 페널티킥으로 3-0을 만들었다. [2][3]

5월 3일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Estádio Fonte Nova)의 2차전은 바이아가 3-2로 이겼다. 산필리포가 9분과 59분에 두 골을 넣었지만 바이아는 카를리토스, 플라비우, 마리투의 골로 경기를 뒤집었다. 두 팀은 한 경기씩 이겨 승점 2점씩을 나눠 가졌고, 골득실에서 앞선 산 로렌소가 4강에 올랐다. [1][2]

8강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CA 산 로렌소 vs EC 바이아

CA 산 로렌소 로고
CA 산 로렌소CLUB ATLÉTICO SAN LORENZO DE ALMAGRO아르헨티나 국기아르헨티나
합계5:3두 경기 결과
EC 바이아 로고
EC 바이아ESPORTE CLUBE BAHIA브라질 국기브라질
1차전
3 : 0
2차전
2 : 3
4강 진출
CA 산 로렌소

CA 산 로렌소로시 60분, 루이스 81분, 산필리포 89분(PK)

1차전

EC 바이아득점 없음

CA 산 로렌소산필리포 9분 59분

2차전

EC 바이아카를리토스 11분, 플라비우 38분, 마리투 89분(PK)

부에노스아이레스의 3-0과 사우바도르의 2-3. 한 경기씩 이긴 2팀을 득실차가 갈랐다.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0-7 미요나리오스 FC: 산티아고의 6골

5월 8일 산티아고 에스타디오 나시오날(Estadio Nacional)의 1차전에서 미요나리오스가 여섯 골을 넣었다. 루벤 피사로(Rubén Antonio Pizarro; 아르헨티나 공격수)와 마리노 클링헤르(Marino Klinger; 콜롬비아 공격수)가 두 골씩, 로돌포 미첼리와 오를란도 라라스가 한 골씩 넣었다. 전반을 0-2로 마친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는 후반에 네 골을 더 내줬다. 5월 15일 보고타 엘 캄핀(Estadio Nemesio Camacho El Campín)의 2차전에서는 피사로가 결승골을 넣어 1-0. 가브리엘 오초아 우리베 감독의 미요나리오스는 두 경기에서 일곱 골을 넣고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2][4]

8강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vs 미요나리오스 FC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로고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CLUB UNIVERSIDAD DE CHILE칠레 국기칠레
합계0:7두 경기 결과
미요나리오스 FC 로고
미요나리오스 FCCLUB DEPORTIVO LOS MILLONARIOS콜롬비아 국기콜롬비아
1차전
0 : 6
2차전
0 : 1
4강 진출
미요나리오스 FC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득점 없음

1차전

미요나리오스 FC피사로 4분 82분, 클링헤르 14분 68분, 미첼리 54분, 라라스 71분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득점 없음

2차전

미요나리오스 FC피사로 48분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의 0-6. 미요나리오스가 2경기에서 7골을 넣고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4강

4강 진출 4개 구단구단별 누적 4강 진출 횟수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단대표 지역4강 진출
CA 페냐롤우루과이통산 첫 4강 진출
CA 산 로렌소아르헨티나통산 첫 4강 진출
미요나리오스 FC콜롬비아통산 첫 4강 진출
클루브 올림피아파라과이통산 첫 4강 진출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4강 1차전 두 경기의 득점자·날짜·경기장·주심·관중
4강 1차전 기록.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4강 2차전 두 경기의 득점자·날짜·경기장·주심·관중
4강 2차전 기록. 53분 델리오 노리에가의 골은 미요나리오스 선수의 자책골이다. 히폴리토 레칼데는 스페인어 발음에 따라 이폴리토 레칼데로 적는다.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4강 재경기 CA 페냐롤과 CA 산 로렌소의 득점자·날짜·경기장·주심·관중
4강 재경기 기록.
4강 2개 대진1·2차전과 재경기, 결승 진출팀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대진1차전2차전재경기합계진출
CA 페냐롤CA 산 로렌소1-10-02-11-1CA 페냐롤
미요나리오스 FC클루브 올림피아0-01-5·1-5클루브 올림피아

CA 페냐롤 1-1·0-0·2-1 CA 산 로렌소: 지진이 옮긴 재경기

5월 18일 센테나리오의 1차전은 2분 만에 카를로스 리나차(Carlos Linazza; 우루과이 공격수)의 골로 시작했다. 산 로렌소는 18분 노르베르토 보조(Norberto Boggio; 아르헨티나 공격수)의 골로 따라잡았다. 산 로렌소의 수비수 이니고가 퇴장당한 이 경기는 5만 5,000명 앞에서 1-1로 끝났다. 5월 24일 다시 우라칸의 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은 0-0이었다. 산 로렌소의 레이노소와 페냐롤의 쿠비야가 함께 퇴장당했다. [2]

두 경기 모두 비겨 승점도 골득실도 같았다. 규정대로라면 재경기는 중립지에서 열려야 했고, 칠레가 그 후보였다. 2차전 이틀 전인 5월 22일, 칠레 남부에서 발디비아 대지진이 일어났다. 칠레 개최가 어려워지자 재경기는 5월 29일 센테나리오로 정해졌다. 훗날 산 로렌소 선수들 사이에서는 구단이 돈을 받고 장소를 넘겼다는 말이 나왔다. [3]

4만 5,000명 앞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스펜세르가 61분 선제골을 넣었다. 산필리포가 86분에 동점골을 넣었지만, 3분 뒤 스펜세르가 다시 골을 넣었다. 2-1. 파라과이의 호세 라로사 주심이 맡은 이 경기에서 페냐롤의 그리에코도 퇴장당했다. [2]

4강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CA 페냐롤 vs CA 산 로렌소

CA 페냐롤 로고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우루과이 국기우루과이
합계1:1재경기로 결정
CA 산 로렌소 로고
CA 산 로렌소CLUB ATLÉTICO SAN LORENZO DE ALMAGRO아르헨티나 국기아르헨티나
4강 1차전
1 : 1
4강 2차전
0 : 0
재경기
2 : 1
결승 진출
CA 페냐롤

CA 페냐롤리나차 2분

4강 1차전

CA 산 로렌소보조 18분

CA 페냐롤득점 없음

4강 2차전

CA 산 로렌소득점 없음

CA 페냐롤스펜세르 61분 89분

재경기

CA 산 로렌소산필리포 86분

1-1과 0-0. 센테나리오의 재경기에서 스펜세르가 2골을 넣었다.

미요나리오스 FC 1-5 클루브 올림피아: 첫 경기를 4강에서 치른 올림피아

올림피아의 첫 경기는 5월 29일 보고타의 4강 1차전이었다. 3만 5,000명이 모인 엘 캄핀에서 미요나리오스의 골키퍼 파블로 센투리온이 골문을 지켜 0-0으로 끝났다. 6월 5일 아순시온 에스타디오 마누엘 페레이라(Estadio Manuel Ferreira)의 2차전은 달랐다. 루이스 돌단(Luis Doldán; 파라과이 공격수)이 15분에 선제골을 넣었고, 테오발도 멜가레호가 43분에 한 골을 더했다. 53분에는 미요나리오스의 델리오 노리에가가 자기 골문에 공을 넣었다. 대회 역사의 첫 자책골이다. 이폴리토 레칼데(Hipólito Recalde; 파라과이 공격수)가 62분, 돌단이 88분에 골을 넣었고, 미요나리오스는 70분 피사로의 골 하나로 마쳤다. 수비수 카를로스 볼라가 퇴장당했다. [2][4]

4강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미요나리오스 FC vs 클루브 올림피아

미요나리오스 FC 로고
미요나리오스 FCCLUB DEPORTIVO LOS MILLONARIOS콜롬비아 국기콜롬비아
합계1:5두 경기 결과
클루브 올림피아 로고
클루브 올림피아CLUB OLIMPIA파라과이 국기파라과이
4강 1차전
0 : 0
4강 2차전
1 : 5
결승 진출
클루브 올림피아

미요나리오스 FC득점 없음

4강 1차전

클루브 올림피아득점 없음

미요나리오스 FC피사로 70분

4강 2차전

클루브 올림피아돌단 15분 88분, 멜가레호 43분, 자책골 53분, 레칼데 62분

보고타의 0-0 뒤 아순시온의 5-1. 1회전을 쉰 올림피아가 결승에 올랐다.

결승

결승 진출 2개 구단구단별 누적 결승 진출 횟수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단대표 지역결승 진출
CA 페냐롤우루과이통산 첫 결승 진출
클루브 올림피아파라과이통산 첫 결승 진출
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결승 두 경기의 득점자·날짜·경기장·주심·관중
결승 두 경기의 기록. 2차전의 경기장은 자료에 따라 푸에르토 사호니아 경기장(지금의 에스타디오 데펜소레스 델 차코)과 올림피아의 마누엘 페레이라 경기장으로 갈린다.

6월 12일 센테나리오의 결승 1차전에서 올림피아는 79분까지 버텼다. 그 시각 스펜세르가 골을 넣었다. 올림피아의 후안 비센테 레스카노가 퇴장당했고, 페냐롤이 1-0으로 이겼다. 로블레스 주심은 대회의 첫 경기와 4강 1차전, 2차전에 이어 결승 1차전도 맡았다. [1][2]

6월 19일 아순시온의 2차전은 올림피아가 먼저 앞섰다. 28분 레칼데의 골이었다. 이대로 끝나면 두 팀은 승점 2점씩, 골득실도 같아져 다시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83분, 첫 경기에서 대회 세 번째 골을 넣었던 쿠비야가 동점골을 넣었다. 1-1. 페냐롤은 1승 1무, 승점 3점으로 첫 대회의 우승 구단이 됐다. [1][2]

결승1960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CA 페냐롤 vs 클루브 올림피아

CA 페냐롤 로고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우루과이 국기우루과이
합계2:1두 경기 결과
클루브 올림피아 로고
클루브 올림피아CLUB OLIMPIA파라과이 국기파라과이
결승 1차전
1 : 0
결승 2차전
1 : 1
우승
CA 페냐롤

CA 페냐롤스펜세르 79분

결승 1차전

클루브 올림피아득점 없음

CA 페냐롤쿠비야 83분

결승 2차전

클루브 올림피아레칼데 28분

센테나리오의 1-0과 아순시온의 1-1. 페냐롤이 첫 대회의 우승 구단이 됐다.

우승 CA 페냐롤구단별 누적 우승 횟수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단대표 지역대회 우승
CA 페냐롤우루과이통산 첫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7경기를 모두 뛴 스펜세르

페냐롤은 일곱 경기에서 3승 4무, 13골을 넣고 다섯 골을 내줬다. 진 경기가 없었다. 그 13골 가운데 일곱 골을 스펜세르가 넣었다. 첫 경기의 네 골, 재경기의 두 골, 결승 1차전의 결승골이다. 대회의 득점왕은 챔피언을 보내지 않은 나라, 에콰도르에서 온 스물두 살의 공격수였다. 순위 전체는 1960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 순위 편에 정리했다.

결승골의 스펜세르, 첫 골의 보르헤스, 우승을 지킨 동점골의 쿠비야. 첫 대회의 큰 장면마다 페냐롤의 공격수가 있었다. 그해 7월, 페냐롤은 남미 챔피언으로 유러피언컵 우승 구단 레알 마드리드와 인터콘티넨털컵에서 만난다.

트로피를 든 페냐롤 선수들의 흑백 사진 위에 페냐롤 2, 올림피아 1의 결승 합계를 얹은 삥이FC 디자인
결승 합계 CA 페냐롤 2-1 클루브 올림피아. 디자인: 삥이FC.

참고 자료

  1. 「Copa Libertadores de América 1960」, RSSSF. 참가 구단, 대진과 경기별 득점자, 결승 두 경기의 선발 명단·득점 시각·주심.
  2. 「Copa Libertadores de América 1960 - Details」, RSSSF(남미 축구 연맹 자료). 경기별 날짜·경기장·주심·관중·퇴장, 참가하지 않은 나라.
  3. 「Copa Libertadores de América 1960」, Historia y Fútbol. 아틸리오 가리도의 연재 「Yo fui testigo aquel 19 de abril de 1960」(당시 《엘 디아리오》·《엘 데바테》 기록에 근거한 첫 경기 회고), 4강 재경기 개최지와 발디비아 대지진, 우니베르시타리오의 불참.
  4. 「Así fue la campaña de Millonarios en la primera edición」, ESPN Deportes. 미요나리오스의 감독과 선수, 대회 첫 자책골.

득점 시각은 결승 두 경기는 RSSSF, 첫 경기는 당시 몬테비데오 신문을 옮긴 가리도의 기록, 4강은 삥이FC 도판을 따랐다. 구단 문장은 1960년 무렵의 도안이다(클루브 올림피아는 현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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