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 유러피언컵
1960-61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주제 아구아스 11골
우승한 SL 벤피카의 주장 주제 아구아스가 9경기 11골로 득점 1위에 올랐다. 2위도 벤피카의 주제 아우구스투, 결승행을 가른 3골의 에바리스투, 4강에서 멈춘 함부르크의 젤러와 슈튀르머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디자인 정정 위 디자인의 클라우스 슈튀머는 독일어 표기에 따라 클라우스 슈튀르머로 적는다. 루이스 수아레스 칸의 스페인 국기는 현재 국기이며, 당시 국기는 1945-1977년의 독수리 문장 국기다. 주제 아우구스투의 7골은 UEFA 기록과 같고, RSSSF 기록은 6골이다(아래 기록 기준).
제6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60-61
4골 이상 넣은 6명
| 순위 | 선수 | 클럽 | 출신 | 출전 | 득점 |
|---|---|---|---|---|---|
| 1위 | 주제 아구아스José Pinto Carvalho dos Santos Águas | 9경기 | 11골 | ||
| 2위 | 주제 아우구스투José Augusto Pinto de Almeida | 9경기 | 7골 | ||
| 3위 | 에바리스투Evaristo de Macedo | 10경기 | 6골 | ||
| 4위 | 우베 젤러Uwe Seeler | 7경기 | 5골 | ||
| 공동 5위 |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Miramontes | 9경기 | 4골 | ||
| 공동 5위 | 클라우스 슈튀르머Klaus Stürmer | 7경기 | 4골 |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며, 교체 제도가 없던 시즌이라 선발 수가 곧 출전 수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주제 아우구스투와 조아킹 산타나의 골 수는 UEFA와 RSSSF가 한 골씩 다르며, 표는 UEFA를 따랐다(아래 기록 기준).
여섯 명이 세 구단에 모여 있다. 우승한 SL 벤피카와 준우승한 CF 바르셀로나, 4강에서 멈춘 함부르크 SV가 두 명씩이다. 벤피카는 아홉 경기에서 26골을 넣었고, 그 가운데 18골을 아구아스와 아우구스투 두 사람이 넣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16강에서 떨어진 시즌이라 레알 선수는 순위에 없다. [1], [2]
9경기 11골, 아구아스의 기록
주장 주제 아구아스(José Águas; 포르투갈 공격수, 1930-2000)는 벤피카의 아홉 경기에 모두 나와 여덟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골이 없던 경기는 우이페슈티 도저 원정의 16강 2차전 하나다. 1960년 9월 29일 에든버러 타인캐슬의 첫 경기에서 36분에 골을 넣었고, 리스본의 예선 2차전에서 7분과 60분에 두 골을 더했다. 우이페슈트와의 16강 1차전 6-2에서 두 골, 오르후스 GF와의 8강 두 경기에서 세 골, SK 라피트 빈과의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씩을 넣었다. [1]
마지막 골은 1961년 5월 31일 베른 반크도르프의 결승에서 나왔다. 코치시에게 선제골을 내준 지 10분 뒤인 31분, 아구아스의 동점골로 벤피카가 따라잡았다. 그 장면은 1961 유러피언컵 결승 H/L에서 볼 수 있다. 한 시즌 전 푸스카스가 세운 12골에 한 골 모자란, 대회 한 시즌 두 번째 기록이다. [1]
벤피카의 오른쪽, 주제 아우구스투
2위 주제 아우구스투(José Augusto; 포르투갈 오른쪽 윙어)는 오른쪽 윙어로 일곱 골을 넣었다.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한 골씩, 우이페슈트와의 16강 1차전에서 12분과 87분에 두 골, 오르후스와의 8강 1차전에서 페널티킥 한 골, 오르후스 원정의 8강 2차전에서 1분과 43분에 두 골이다. 4강과 결승에서는 골이 없었다. 아구아스와 아우구스투가 함께 골을 넣은 경기는 다섯 경기다. [1]
결승행을 가른 에바리스투의 3골
3위 에바리스투(Evaristo de Macedo Filho; 브라질 공격수, 1933-)는 바르셀로나의 10경기에 모두 나와 여섯 골을 넣었다. 리르서 SK와의 예선 2차전에서 두 골, 스파르타크 흐라데츠크랄로베와의 8강 1차전에서 한 골을 넣었고, 나머지 세 골은 모두 1-0이나 2-1을 만든 결승골이었다. 1960년 11월 23일 캄 노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긴 16강 2차전의 82분 골, 함부르크 SV와의 4강 1차전 46분 골, 브뤼셀 헤이젤 재경기의 42분 골이다. 레알을 처음 떨어뜨린 경기와 결승에 오른 경기가 모두 에바리스투의 골로 갈렸다. [1], [3]
함부르크의 두 사람, 젤러와 슈튀르머
4위 우베 젤러(Uwe Seeler; 서독 센터 포워드, 1936-2022)는 일곱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었다. 함부르크의 첫 유러피언컵 경기인 BSC 영 보이스 원정 16강 1차전에서 34분과 39분에 두 골, 번리 FC와의 8강 2차전 4-1에서 두 골,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에서 68분에 합계를 뒤집는 골을 넣었다. 같은 함부르크의 클라우스 슈튀르머(Klaus Stürmer; 서독 공격수)는 영 보이스와의 두 경기에서 세 골, 번리와의 8강 2차전에서 8분 첫 골을 넣었다. 번리전 4-1의 네 골 가운데 세 골이 두 사람의 것이다. 젤러의 1960년은 1960 발롱도르 편에 있다. [1], [3]
1960년 발롱도르 수상자, 수아레스의 4골
공동 5위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Miramontes; 스페인 미드필더, 1935-2023)는 아홉 경기에서 네 골을 넣었다. 리르서와의 예선 1차전에서 한 골, 레알 마드리드 원정의 16강 1차전에서 두 번 따라잡은 두 골, 흐라데츠크랄로베 원정의 8강 2차전에서 한 골이다. 베르나베우의 두 번째 골은 87분 페널티킥이었다. 그 레알전 두 골로 바르셀로나는 베르나베우에서 지지 않은 첫 팀이 됐다. [1]
기록 기준
골 수는 UEFA 경기 데이터의 51경기 득점 기록을 한 골씩 셌고, RSSSF의 경기별 득점자 줄과 득점 순위 요약과 대조했다. 득점자가 다른 경기는 1960년 11월 벤피카-우이페슈트 16강 1차전 6-2 하나다. UEFA는 벤피카의 여섯 골을 카벵 1분, 아구아스 6분·28분, 아우구스투 12분·87분, 산타나 16분으로, RSSSF는 콜루나 1분, 아구아스 5분·11분, 산타나 16분·28분, 아우구스투 88분으로 적는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의 골은 UEFA로 일곱, RSSSF로 여섯이고, 조아킹 산타나(Joaquim Santana)의 골은 UEFA로 셋, RSSSF로 넷이다. 세 번째 자료로 가리지 못해 표는 UEFA를 따랐고, 산타나는 UEFA 기준으로 세 골이라 표에 넣지 않았다. 두 자료는 이 경기의 날짜도 UEFA 11월 6일, RSSSF 11월 8일로 다르게 적는다. [1], [2]
득점 시각은 몇 경기에서 두 자료가 1분에서 15분 안팎으로 다르며, 본문의 분은 UEFA 경기 데이터를 따랐다. 함부르크의 경기는 DFB 데이터센터와도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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