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 유러피언컵
1960-61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아구아스·콜루나·수아레스, 그리고 젤러와 하나피
레알 마드리드가 없는 첫 결승까지 51경기의 출전 명단과 득점으로 다시 고른 여섯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한 SL 벤피카 5명, 준우승한 CF 바르셀로나 3명, 4강의 함부르크 SV 2명과 SK 라피트 빈 한 명을 3-4-3으로 세운 삥이FC 회고 베스트 11.
제6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60-61
공식 베스트 11이 없던 여섯 번째 대회
- 대회 기간
- 1960년 8월 31일-1961년 5월 31일
- 참가
- 28개 구단 · 기권 2
- 경기 수
- 51경기 · 164골
- 우승
- SL 벤피카
- 준우승
- CF 바르셀로나

- 4강
- SK 라피트 빈
· 함부르크 SV
- 득점왕
- 주제 아구아스
· SL 벤피카 · 11골
- 득점 2위
- 주제 아우구스투 · SL 벤피카 · 7골
- 득점 3위
- 에바리스투 · CF 바르셀로나 · 6골
- 도움 순위
- 공식 집계 없음
득점은 UEFA 경기 데이터를 RSSSF와 대조한 값이다. 주제 아우구스투의 골은 RSSSF가 여섯 골로 적어 UEFA 기록을 따랐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전체 순위와 두 자료가 갈린 골은 1960-61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에 정리했다. [1][2]
여섯 번째 유러피언컵은 베른 반크도르프의 3-2로 끝났다. 다섯 번을 내리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는 16강에서 바르셀로나에 졌고, 결승에는 처음으로 레알이 아닌 두 팀이 올랐다. 구트만 벨러의 벤피카가 먼저 한 골을 내준 뒤 세 골을 넣어 포르투갈 구단으로 처음 우승했다. 그해에도 대회를 대표할 11명의 명단은 누구도 발표하지 않았다. 예선부터 8강까지는 1960-61 유러피언컵 본편, 빈의 관중 소동과 브뤼셀 재경기는 4강 편, 반크도르프의 결승은 결승 하이라이트에서 이어진다.
이번 시즌의 고민은 센터 포워드였다. 득점 1위 주제 아구아스는 벤피카의 센터 포워드였고, 결승행을 가른 두 골을 넣은 에바리스투는 바르셀로나의 9번이었다. 함부르크의 우베 젤러도 센터 포워드로 다섯 골을 넣었다. 여기에 벤피카의 마리우 콜루나와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는 둘 다 결승에서 10번을 단 인사이드 레프트였다. WM의 한 칸에 둘, 셋씩 몰린 이름들을 다 세우려고 전술판을 3-4-3으로 그렸다. 센터 포워드는 11골의 아구아스에게 주고, 젤러를 오른쪽 윙으로, 에바리스투를 왼쪽 미드필더로 옮겼다. 두 사람의 자리는 전술판 설명과 선수 카드, 기록 기준 세 곳에 필자 배치로 밝힌다.
나머지 아홉 자리는 결승 명단과 선수들의 원래 자리를 따랐다. UEFA가 공개한 51경기의 선발 명단에서 선수마다 출전 경기와 골, 그가 선 경기의 실점을 모았다. 그다음 누가 어느 자리에서 대회의 흐름을 틀었는지 따졌다. [1][2]
11명을 읽는 법
앞선 시즌들의 전술판은 WM(WM formation; 수비 3명, 하프 2명, 인사이드 2명과 전방 3명이 W와 M 모양을 이루는 전형)의 당대 역할어로 그렸다. WM은 숫자로 쓰면 3-2-2-3이다. 두 하프와 두 인사이드를 한 줄로 당기면 3-4-3이 되고, 이번 전술판은 그 모양을 쓴다. 그래서 역할어도 3-4-3의 것으로 적는다. GK는 골키퍼, RB·CB·LB는 오른쪽·가운데·왼쪽 수비, RM·CM·LM은 오른쪽·가운데·왼쪽 미드필더, RW·CF·LW는 오른쪽 윙·센터 포워드·왼쪽 윙이다. 선수 카드에는 결승이나 대회에서 실제로 맡은 WM의 자리를 함께 적었다.
이 시즌은 등번호로 역할을 복원하지 않았다. UEFA 데이터의 함부르크 선발 명단은 일곱 경기 내내 젤러가 2번, 게르트 되르펠이 4번, 젤러의 형 디터가 9번이다. 센터 포워드와 왼쪽 윙어가 풀백과 하프의 번호를 단 셈이라, 경기마다 단 번호보다 명단을 적은 순서로 읽힌다. 그래서 역할은 RSSSF가 적은 결승 두 팀의 대형과 선수들의 원래 자리로 정했고, 등번호는 결승 기록과 대회 내내 같았던 번호만 카드에 적었다. 결승의 벤피카는 코스타 페레이라 앞에 마리우 주앙, 제르마누, 앙젤루 마르팅스를 세 수비로 두었다. 이 전술판에서 오른쪽 수비 자리는 라피트의 게르하르트 하나피가 맡는다. 젤러의 RW와 에바리스투의 LM은 필자 배치다. [1][2]
LW게르트 되르펠함부르크 · 7경기 3골
CF주제 아구아스벤피카 · 9경기 11골
RW우베 젤러함부르크 · 7경기 5골
LM에바리스투바르셀로나 · 10경기 6골
CM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 · 9경기 4골
CM마리우 콜루나벤피카 · 9경기 2골
RM주제 아우구스투벤피카 · 9경기 7골
LB앙젤루 마르팅스벤피카 · 8경기
CB제르마누벤피카 · 8경기
RB게르하르트 하나피라피트 · 9경기 1골
GK안토니 라마예츠바르셀로나 · 10경기
CF 바르셀로나
· 10경기 9실점 · 무실점 5회 · 주장

SK 라피트 빈 · 9경기 1골 · 전 경기 2번 · 풀백

SL 벤피카
· 8경기 · 결승 5번 · 센터 하프

SL 벤피카
· 8경기 · 결승 3번 · 풀백

SL 벤피카
· 9경기 7골 · 전 경기 7번 · 아웃사이드 라이트

SL 벤피카
· 9경기 2골 · 전 경기 10번 · 결승골

CF 바르셀로나
· 9경기 4골 · 결승 10번 · 1960년 발롱도르

CF 바르셀로나
· 10경기 6골 · 결승 9번 · 센터 포워드 · 4강 두 결승골

SL 벤피카
· 9경기 11골 · 득점왕 · 주장 · 결승 9번

함부르크 SV · 7경기 5골 · 센터 포워드 · 1960년 발롱도르 3위

함부르크 SV · 7경기 3골 · 아웃사이드 레프트
골문과 세 수비
골문은 준우승한 바르셀로나의 주장 안토니 라마예츠(Antoni Ramallets; 스페인 골키퍼, 1924-2013)에게 맡겼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바르셀로나의 10경기를 모두 지켰다. 이 시즌 10경기를 뛴 선수는 그와 에바리스투뿐이다. 아홉 골을 내줬고 다섯 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쳤다. 리르서 SK와의 예선 두 경기, 스파르타크 흐라데츠크랄로베와의 8강 홈경기, 그리고 함부르크와의 캄 노우 1차전과 헤이젤 재경기다. 함부르크를 넘은 두 번의 1-0은 모두 그의 무실점이었다. 결승에서는 코치시의 선제골 뒤 31분 아구아스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1분 뒤 골문 앞으로 날아온 공을 잡지 못해 자책골을 기록했다. 우승한 벤피카의 코스타 페레이라(Alberto da Costa Pereira; 포르투갈 골키퍼)는 아홉 경기에서 10골을 내줬다. 결승의 실수 하나보다 결승까지 10경기의 골문을 더 무겁게 쳤다. [1][2]
그 앞의 가운데에는 벤피카의 제르마누(Germano de Figueiredo; 포르투갈 수비수)가 선다. 우이페슈티 도저 SC와의 16강 1차전 6-2 하나를 빼고 벤피카의 여덟 경기에 나섰다. 다섯 경기를 센터 하프의 5번, 세 경기를 4번으로 뛰었고 결승에서는 5번이었다. 그가 선 여덟 경기에서 벤피카는 여덟 골을 내줬다. [1][2]
왼쪽은 같은 벤피카의 앙젤루 마르팅스(Ângelo Martins; 포르투갈 수비수)다. 타인캐슬의 첫 경기 하나를 빼고 여덟 경기에 나섰다. 2번과 3번을 네 경기씩 달았고, 결승에서는 왼쪽 풀백의 3번이었다. 결승 명단에서 오른쪽 풀백은 마리우 주앙이었지만, 그는 이 시즌 두 경기에만 나섰다. 대회 내내 양쪽을 오간 앙젤루를 결승의 자리대로 왼쪽에 두었다. [1][2]
오른쪽 수비는 4강의 SK 라피트 빈에서 데려왔다. 게르하르트 하나피(Gerhard Hanappi; 오스트리아 축구선수, 1929-1980)는 라피트의 아홉 경기에 모두 2번으로 나섰다. 라피트는 베식타시 JK와의 예선을 넘었고, 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와는 두 경기를 1승 1패로 마친 뒤 바젤의 재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비스무트와의 1차전 3-1에서는 하나피가 61분 골을 넣었다. IFK 말뫼와의 8강 두 경기를 모두 2-0으로 이겨 처음 4강에 올랐다. 리스본에서 0-3으로 진 뒤 빈의 2차전은 관중 소동으로 88분에 멈췄고, 1-1이 결과로 남았다. 그가 선 아홉 경기에서 라피트는 여덟 골을 내줬다. 라피트의 옛 홈구장 게르하르트 하나피 슈타디온은 그의 이름을 땄다. [1][3]
네 미드필더
오른쪽 미드필더는 득점 2위 주제 아우구스투(José Augusto; 포르투갈 오른쪽 윙어)다. 벤피카의 아홉 경기에 모두 7번으로 나서 일곱 골을 넣었다.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한 골씩, 우이페슈트와의 16강 1차전에서 12분과 87분, 오르후스 GF와의 8강 1차전에서 페널티킥, 2차전에서 1분과 43분 골이다. 4강과 결승에서는 골이 없었다. 결승 명단의 자리는 오른쪽 끝의 아웃사이드 라이트였다. 같은 오른쪽 측면에서 한 줄 내려 그렸다. [1][2]
가운데의 한 사람은 마리우 콜루나(Mário Colun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미드필더, 1935-2014)다. 벤피카의 아홉 경기에 모두 10번으로 나섰다. 골은 두 개다. 라피트와의 4강 1차전 19분 첫 골, 그리고 결승 55분의 중거리 슛이다. 2-1로 앞선 벤피카에 세 번째 골을 더했고, 75분 치보르가 한 골을 따라붙으면서 그 골이 결승골이 됐다. RSSSF는 우이페슈트와의 16강 1차전 1분 골도 콜루나의 골로 적어 세 골로 센다. UEFA는 그 골을 카벵의 골로 적는다. 결승 명단에서는 아구아스의 왼쪽 인사이드 레프트였다. [1][2]
그 옆의 다른 한 사람은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Miramontes; 스페인 미드필더, 1935-2023)다. 리르서 원정 하나를 빼고 바르셀로나의 아홉 경기에 나서 네 골을 넣었다. 11번을 다섯 경기, 10번을 네 경기 달았고 결승은 10번이었다. 베르나베우의 16강 1차전에서는 레알에 두 번 뒤졌다가 두 번 따라잡는 골을 넣었다. 1960년 12월 13일, 대회가 16강과 8강 사이에 있을 때 『프랑스 풋볼』은 그에게 발롱도르를 줬다. 3위가 이 전술판 오른쪽 끝의 젤러였다. 그해의 투표는 1960 발롱도르 편, 그의 축구 인생은 루이스 수아레스 편에서 이어진다. 한 시즌 전 이 명단에서는 인사이드 라이트에 섰다. [1][4]
왼쪽 미드필더에는 필자가 에바리스투(Evaristo de Macedo Filho; 브라질 공격수, 1933-)를 세웠다. 원래 자리는 센터 포워드다. 바르셀로나의 10경기에 모두 나서 여섯 경기를 9번으로 뛰었고, 결승도 9번이었다. 여섯 골 가운데 세 골이 1-0과 2-1을 만든 골이다. 레알과의 16강 2차전 2-1에서 한 골을 넣어 다섯 번 우승한 팀을 처음 떨어뜨렸고, 함부르크와의 4강에서는 캄 노우의 1차전 46분과 헤이젤 재경기 42분에 혼자 골을 넣었다. 바르셀로나를 결승으로 보낸 두 경기의 골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센터 포워드 자리를 11골의 아구아스에게 주고, 그 세 골을 이 명단에서 뺄 수 없어 결승에서 치보르가 섰던 왼쪽으로 한 줄 내려 세웠다. [1][3]
세 공격
한가운데는 득점왕 주제 아구아스(José Águas; 포르투갈 공격수, 1930-2000)다. 벤피카의 주장으로 아홉 경기에 모두 나서 11골을 넣었고, 우이페슈트 원정 하나를 빼고 여덟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하츠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세 골, 우이페슈트와의 16강 1차전에서 두 골, 오르후스와의 8강에서 세 골, 라피트와의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씩이다. 결승에서는 코치시에게 선제골을 내준 10분 뒤 31분 동점골을 넣었고, 경기가 끝난 뒤 주장으로 트로피를 들었다. 레알이 아닌 구단의 주장이 처음 든 유러피언컵이었다. 그의 축구 인생은 주제 아구아스 편에 정리했다. [1][2]
오른쪽 끝에는 필자가 우베 젤러(Uwe Seeler; 서독 센터 포워드, 1936-2022)를 세웠다. 원래 자리는 함부르크의 센터 포워드다. 함부르크의 일곱 경기에 모두 나서 다섯 골을 넣었다. 함부르크의 첫 유러피언컵 경기인 BSC 영 보이스 원정에서 34분과 39분, 번리 FC에 1-3으로 지고 돌아온 8강 2차전 4-1에서 42분과 61분,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에서 합계를 뒤집은 68분 골이다. 그 골로 함부르크는 결승을 눈앞에 뒀지만, 90분 코치시의 골로 합계가 다시 맞춰졌고 헤이젤에서 졌다. 1960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오른 선수이고, 이 시즌 결승에 오르지 못한 팀의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가운데를 아구아스에게 주고 오른쪽 끝으로 옮겼다. [1][3][4]
왼쪽 끝은 같은 함부르크의 게르트 되르펠(Gert Dörfel; 서독 왼쪽 윙어)이다. 함부르크의 일곱 경기에 모두 나서 세 골을 넣었다. 영 보이스와의 16강 2차전 3-3에서 72분, 번리 원정 8강 1차전에서 1-3을 만든 75분, 2차전 4-1에서 57분 골이다. 터프 무어에서 넣은 한 골이 두 달 뒤 함부르크의 뒤집기를 가능하게 했다. 함부르크가 이 대회에서 넣은 15골 가운데 여덟 골이 젤러와 되르펠 두 사람의 골이었다. [1][2]
명단 밖에 남은 이름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바르셀로나의 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 헝가리 공격수, 1929-1979)다. 일곱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는데, 하나는 함부르크 원정 90분에 합계를 맞춰 재경기를 만든 골이고, 다른 하나는 결승 21분의 선제골이다. 결승에서 골을 넣은 치보르 졸탄(Czibor Zoltán; 헝가리 왼쪽 윙어, 1929-1997)도 다섯 경기 두 골에 그쳤다. 두 사람의 골은 컸지만, 대회 전체의 무게는 에바리스투 쪽이 더 컸다. [1][2]
벤피카에서는 조아킹 산타나(Joaquim Santana; 포르투갈 공격수)와 도미시아누 카벵(Domiciano Cavém; 포르투갈 공격수)이 끝까지 남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경기에 나섰고 산타나가 세 골, 카벵이 두 골을 넣었다. 하프의 주제 네투(José Neto; 포르투갈 하프백)와 페르난두 크루스(Fernando Cruz; 포르투갈 하프백)도 아홉 경기를 모두 뛰었다. 다섯 명을 낸 우승팀에서 더 데려오면 이 명단은 벤피카의 결승 명단에 가까워진다. [1]
함부르크의 클라우스 슈튀르머(Klaus Stürmer; 서독 공격수)는 일곱 경기에서 네 골을 넣어 수아레스와 함께 공동 5위였다. 영 보이스 원정에서 젤러와 두 골씩을 나눠 넣었다. 젤러와 되르펠을 세우면서 남겼다. 번리의 지미 롭슨(Jimmy Robson; 잉글랜드 공격수)도 네 경기 세 골을 넣었지만 팀이 8강에서 멈췄다. [1][2]
그렇게 추리고 나니 벤피카에서 다섯 명, 바르셀로나에서 세 명, 함부르크에서 두 명, 라피트에서 한 명이 남았다. 4강에 오른 네 팀이 모두 한 명 이상을 냈고, 레알 마드리드는 한 사람도 없다. 1955-56 첫 대회부터 다섯 시즌 동안 이 명단에 늘 여러 명이 서 있던 레알의 자리를, 레알을 떨어뜨린 바르셀로나와 그 바르셀로나를 결승에서 이긴 벤피카가 나눠 가졌다.
출처와 기록 기준
-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60/61 matches and line-ups」, UEFA 경기 데이터. 51경기의 선발 명단, 선수별 등번호, 득점과 실점.
- 「European Champions’ Cup 1960-61 - Details」, RSSSF. 경기별 득점자, 결승 두 팀의 대형과 주장, 득점 순위 요약.
- 「European Champions’ Cup 1960-61」, RSSSF. 바젤 재경기, 빈 2차전 88분 중단과 결과 인정, 브뤼셀 재경기.
-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60」, RSSSF. 『프랑스 풋볼』 1960년 12월 13일 발표, 1위 수아레스, 3위 젤러.
1960-61 시즌에는 공식 대회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11명은 삥이FC가 2026년 선정한 회고 명단이다. 출전 경기와 실점·무실점은 UEFA 경기 데이터의 선발 명단과 경기 결과, 득점은 UEFA와 RSSSF로 맞춘 기록을 기준으로 하며 공식 도움 통계는 없어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이 시즌 UEFA 데이터의 함부르크 등번호는 명단 순서로 보여 역할 복원에 쓰지 않았고, 역할은 RSSSF의 결승 대형과 선수의 원래 자리를 따랐다. 전술판은 WM의 3-2-2-3을 한 줄로 당긴 3-4-3이며, 센터 포워드 우베 젤러를 오른쪽 윙에, 결승 9번 에바리스투를 왼쪽 미드필더에 세운 것은 필자 배치다. 사진: 안토니 라마예츠 1950년 6월 3일(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게르하르트 하나피 1953년 9월 30일 FIFA 선발팀(Anefo, J.D. Noske, CC BY-SA 3.0 nl), 제르마누 1962년 5월 2일 암스테르담 유러피언컵 결승 전(Anefo, Jac. de Nijs, CC0), 주제 아우구스투 1965년 5월 9일 암스테르담(Anefo, Jac. de Nijs, CC0), 에바리스투 1960년 8월 23일(Anefo, Joop van Bilsen, CC0, 이상 Wikimedia Commons), 루이스 수아레스 1959-60 베스트 11 편, 주제 아구아스 인물관 주제 아구아스 편, 마리우 콜루나 GOAT 선수 카드. 표지 사진: 유러피언컵을 든 벤피카 주장 주제 아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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